보상 | 운영자 | 2019-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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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상 사도 바울이 이 보상 문제에 관해 핵심적인 말을 했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행 24:16)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말은 사람 앞에서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자기의 힘으로 바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꼭 바로 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 회개를 하는데 있어서의 보상, 즉 지난 잘못을 바로 하는 것은 없어서는 아니되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보상'의 정의는 회복의 행위인데 특히 물건을 정당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을 말하며, 상대편의 손해나 피해에 응당한 것을 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전 성경에서 보상의 원리는 죄인이 자기의 죄에서 돌아와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일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때 죄의 결과로 오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예가 많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죄가 곧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뉘우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즐거이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그 죄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면 그것은 바로 해야 한다. 율법이 보상을 가르침 이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뚜렷하다. 보상의 필연성은 구약 율법에 엄격히 보여준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맹세 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거짓 맹세한 것을 돌려보내되 곧 본물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레위기 6:2-5) 범죄자의 속건제는 보상을 하는 조건에서 많이 흡납되었다. 선지자가 가르침 율법에 나타난 이 보상의 원리를 선지자들이 가르쳤고, 더욱 보강하여 나타내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늑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겔 3:14) 에스겔은 율법이 주어지고 여러 세기가 지나서 나타난 선지자이며, 특히 그의 때는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했지만, 충성스런 선지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도 수정함 없이 나타내었다. 범죄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으려면 반드시 보상이 필요했다. 언제나 동일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은 악인이 만일 그 악에서 돌아서서 법대로 행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 하면 결코 죽지 않는다는 법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악인이 회개하고, 그 회개가 진실한 것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전당물을 도로주며 늑탈물을 돌려보내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심 어떤 사람이 말하는 대로 율법의 때가 지나가고 은혜시대가 시작되어도, 이 보상의 필연성이 제외되거나 생략되는 것은 아니다. 은혜는 바로 할 수 있는 죄를 결코 그대로 덮어주지를 않는다. 예수님께서 이 보상의 문제를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자 할 때 거리끼는 양심을 그대로 가지고 드리려 하지 말고, 형제에게 먼저 화목하여 모든 거리끼는 것을 없이한 후 드려야한다. 모든 잘못은 바로해야 한다. 보상의 문제를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가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열거한 성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성경이 이 문제에 관해서 일언의 설명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자 할 때 반드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양심이 말해주지 않는가? 잘못한 과거를 바로하려고 노력도 해 보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종교가 빚을 온전히 갚아주고 훔친 것을 돌려주고, 거짓말한 것을 고백하고 감춘 범죄를 드러내야 된다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종교를 참 종교로 신임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삭개오라 하는 엄한 세리가 있었는데, 그는 아마 항상 재치있게 세무거래를 하므로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나, 성경은 별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접촉하자 곧 자기 속에 새 생명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눅 19:8) 고 했다. 그는 율법에 나타난 데로 깨끗하기를 원했으며, 그 보다도 더 갚아주려고 했다. 참 중생함을 받은 사람은 이 보상의 문제를 의심치 않으며, 자기의 지난 잘못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면 모두 바로 하고야 만다. 보상의 문제는 회개하여 구원받는 문제만큼 복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상의 범위는 사기, 절도, 부정취득, 갚지 않은 돈 등 금전에 관계된 것뿐만 아니라, 거짓말모략중상, 허위보고, 불공평한 비평 등 말이나 행동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친 것은 무엇이나 포함된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모든 조건을 반드시 보상해 주도록 하시지만 우리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가서 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신다. 마음에 참 죄책을 느끼는 사람은 어떠한 희생으로도 그 죄책에서 해방 받기를 갈망하며, 보상은 결코 부당한 고통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는 죄짐을 벗기 위하여 무엇이나 필요한 것을 다 하기를 원한다. 사람이 온 마음과 영혼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옛날의 죄악의 생활을 포기치 못하고 모든 잘못한 것을 다 보상해주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자체가 거짓이요, 세상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 보상은 비단 한 개인에게 잘못한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재단단체 혹은 회사에 해를 끼친 것도 말하며, 국법을 어긴 것도 포함한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그 단체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갚지 않아도 좋다는 법은 없다. 성경에 보면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고 했으니, 비록 상대편이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모를 수가 없으니 그 일을 바로 하기까지는 양심의 해방을 받지를 못한다. 도덕상의 의무 사람의 법에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이 절대 부정하는 것까지 용납하는 것이 많다. 시민법 상으로는 조금도 어김없이 생활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어긋난 때도 허다하다. 예를 들면 시민법에는 채무라도 시효의 기일이 넘어지면 면제되는 것이 있으나, 하나님의 법에는 시효해제가 없으며, 시간이 도덕상의 의무를 무효화하지 못한다. 파산에 관한 법률에도 모든 채무가 무효화 될 수 있으나, 어떠한 파산 청구도 천국의 법정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사람의 법에는 교묘한 장사 흥정이나 사람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일에 관해서는 규정이 없으나 하나님의 법은 정당한 보상과 봉사에 정직한 대가를 주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법에는 고용주가 직업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를 이용하여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아도 규제가 없으나, 그 고용주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면 자기의 결재권 내에서 정당한 임금을 주어야 한다. 지금 소위 정의의 행정이라 불리우는 기구에서도 법률전문가들을 통하여서나 법정의 복잡한 기구의 실수라는 것을 통하여 정당한 채무가 많이 면제되고 범죄사실까지 면책되는 것이 허다하다. 그러나, 최후 법정에 가서는 정의를 저지할만한 합법적인 법률전문가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범죄는 이 땅위에서 바로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세에서는 반드시 그 잘못에 응당한 조치를 받는다. 고로, 이 땅위에서 모든 잘못을 바로 해결함이 최상의 길이다. 그 이유는 지금은 우리가 자비를 입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있고 모사가 있기 때문이요, 우리의 대언자는 한 사건도 빼지 않으시고 우리 앞서 가셔서 우리의 고백을 들을 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우리의 비틀어진 것을 바로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조건있는 구원 우리가 구원받을 때는 보통 보상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타인에게 잘못한 것을 우리의 힘이 미치는 한 완전히 바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죄인의 마음을 여시고 그의 지난날의 죄를 용 서하신다. 회개할 때 몇 분간에 보여주신 것을 다 보상해 주는데는 사람에 따라 여러 해가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그가 계속 주님께 신실하게 모든 것을 보상해 줄 것을 약속하면 하나님은 결코 그 구원을 도로 빼앗지 않으신다. 삭개오도 보상을 하기 전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보상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으므로 보상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그가 약속한대로 보상을 한즉 하나님도 구원의 약속을 지키셨다. "그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3:1-2)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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