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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두 번째 사역인 완전 성화 운영자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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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두 번째 사역인 완전 성화

성서는 분명히 그리고 명확히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기서 그리고 지금 모든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된 증거를 얻은 믿음의 사람 아벨부터(히브리서 11:4) 사랑의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요한일서 4:17) 이 세상에서 모든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명과 기도와 그리고 약속들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디도 2:14) 죽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어서 일치합니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눅 1:74-75, 마 5:48, 22:37, 요 17:20-23, 롬 8:3-4, 살전 5:23, 요일 3:8, 시 130: 8. 겔 36:22-29)

성서는 죄의 이중적 성격 즉 죄의 행위와 죄의 원리 또는 자범죄와 내재하는 죄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 18:21, 요5:14, 8:11, 롬 6:15, 요일2:1, 3:9, 5:16 참조. 마 1:21, 26:28, 요 9:34, 행 2:38, 시 51:5, 벧전 2:24, 요 1:29, 요일 2:2, 롬 6:6과 비교)

죄의 이중적 성격은 지금까지 인정되어 왔으며, 응용된 용어들은 그들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결케 한다" "'씻는다" "깨끗케 한다" 등의 용어는 우리 속에 있는 죄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고, "제한다" "사한다" "용서한다" 등은 실지로 범한 죄에 관하여 언급한 것입니다. (이사야 6:7, 고후 7:1, 행 15:9, 엡 1:7)  

신생  

회개에 있어서 모든 자범죄는 사함을 받습니다. 영혼을 의롭게 하고,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양자됨을 입습니다. (행 3:19, 13:38-39, 고후 5:17, 롬 8:15-16)

우리는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진 때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의 마음속에서 증거하는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고전 2:12, 고후 13:5)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서 성령의 열매를 갖게 됩니다. (갈 5:23)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소유합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증거를 가집니다. (갈 4:5-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롬 8:9) 성령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영이며 영들이 아닙니다.

만일 회개할 때 받은 것이 아닌 다른 영이 마음속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분명히 마귀로부터 온 것이며, 그 영혼은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은 회개할 때와 성화될 때 그리고 세례를 받을 때, 보다 큰 분량의 신의 충만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며, 또한 하나님께 관한 보다 깊은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엡 3:19)

우리는 칭의가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알며 또한 그 증거는 명백합니다. 보시오. 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됩니다. 산들과 작은 산들이 우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칩니다. (이사야 55:12) 그것은 굉장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은 그 보다 더한 일도 하십니다.

큰 일은 마치었고 보다 큰 기대는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이미 시작하신 일을 완성시키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양자가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러나 완전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죄에 기울어지는 성품을 완전히 제거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즉 완전히 죄의 몸을 제거하고, 온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과 사랑 안에서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성결

성결은 영적 본성 즉 속 사람의 깊이에까지 도달하는 일이며,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 8:4)

진실하게 회개한 모든 남녀는 외적으로 거룩한 생애를 살게 됩니다. 당신은 회개한 순간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그와 같은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밖에서 오는 유혹이나 안에서 일어나는 유혹에 반드시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반대되는 어떤 성향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씻어 버려야 할 필요를 느낄 때, 그 순간은 곧 당신이 모든 생리적인(모태부터 가지고 있던) 죄에서 깨끗함을 얻어야 하며, 하나님의 형상과 참 성결한 상태로 새롭게 함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고 거룩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성결하다고 할 때 그것은 그의 거룩한 성품인 정결의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결이란 말을 우리들에게 대하여 사용할 때 그것은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영적 존재가 정화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가 우리의 안에서 역사하는 참된 체험을 통하여 거룩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것은 십자가에서 마쳤기 때문에 그 사실에 동의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저들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어떠한 체험도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그것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영원히 그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결해야 합니다. 성서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히 12 :14)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3)  

구약 시대에도 영혼은 구원을 받고 또 성화 되었습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관여 기록한 다음 성구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죄에 관하여-----출애굽기 34:6-7, 시 32:1-2, 103: 3, 이사야 55:7

성결에 관하여-----창세기 17:1, 레위기 11:44, 19:18, 신명기 6:4-5, 10:12-19, 30:6, 시 51:2-10

성령에 관하여-----출애굽기 31:3, 민수기 27:18, 신명기 34:9, 느헤미야 9:30, 에스겔 3:2 4, 미가 3:8, 스가랴 7:12, 눅 1:15, 41, 67, 그리고 시 34:1, 45:1과 히 브리서 11장을 읽어보십시오.

성서 말씀들은 그들이 참 구원을 즐길 수 있었고, 또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모두 사죄와 정결함을 받고 성신의 임재와 능력을 오순절 전에도 상당한 분량에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동물의 피는 그 자체에 있어서 죄를 없이 하기에는 무가치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롭고 능력 있으며 자기 희생의 피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들은 그 자체의 공로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고, 또한 그것들은 본질에 있어서 정결케 하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의 희생을 가르킨 것입니다. 따라서 오직 예수의 보혈만이 모든 죄를 없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보시는 데서 드리는 외면상의 표현 뿐 아니라 성령의 증거로써 율법 아래에서 드리는 그 희생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4)

그 제물들의 법적 가치는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히브리 9:13)따라서 그 모형적 가치는 영을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로마 4:11-12, 갈라디아서 3:7-8)

희생 제물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 거기에 나오는 자들을 완전케 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물세례나 성만찬의 예식이 그 자체에 있어서 구원하는 능력이 없는 것과 같으며 오직 두 경우에 있어서 표시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서는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체험으로써 성화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분명히 그리고 확실히 속에 있는 죄로부터 구원받았는데 그것은 그의 예언서 6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6:1-7)

그것은 성화의 필요를 알고 고백하며, 칭의의 뒤에 일어나는 분명하고 순간적인 은혜의 역사를 얻은 하나님의 사람에 관한 명백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의 거룩한 환상을 볼만한 곳에 살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는 죄책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위기 속에서 그는 스랍들과 함께 창화하며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그리고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거룩한 하나님의 존전에서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까?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습니다. (히브리 12:14)

이사야는 자신의 불결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남을 중상하고 험담했다라고 고백하는 말을 듣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일에 대한 용서보다도 더 깊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곧 정결함을 원했습니다. 그와 그의 백성들의 상태는 스랍들과 함께 거룩한 하나님을 예배할 만한 능이 없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순간적으로 원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한 선지자가 순간적으로 내재하는 죄로부터 구원되었다는 이 사실보다도 더 분명하고 똑똑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도 이처럼 그의 마음이 깨끗함을 받아야 할 필요를 느끼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편 51편)

아브라함도 역시 하나님에게 수락된 후에 일어나는 명확한 체험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뒤에 더 자세하게 말하겠습니다.

죄를 깨끗이 하는 것과 용서함을 받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의 섭리 속에서 은혜의 단 한번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은혜의 두번째 역사는 더 큰 빛이 왔을 때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전의 진리와 빛과 또는 거기에 반대되는 어떠한 방법도 결코 없애버리지 않으시고 거기에 계속되는 계시만이 오직 먼저 있었던 것을 더 큰 빛으로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계시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모든 육체에게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시지만 그것은 진실한 아브라함에게 지시되었던 것과 같은 칭의를 섬멸하지는 않으며 도리어 우리에게 더 명확히 알도록 하여 주십니다. 그것은 또한 성화를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큰 빛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사도 행전 첫 부분에서 강조되어 있는 진리는 놀라운 성령의 세례인 것을 우리는 알지만,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서 이 귀한 성령을 받는 단계로써 신생과 성결의 은혜

를 받았던 사람들임을 압니다.

이 거룩한 섭리의 새로운 특권은 성령의 세례이며, 이미 받은 신생이나 성화는 이전처럼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고넬료의 집과 에베소인들에게 관하여 사도행전에 강조되어 있는 체험은 곧 성령의 세례입니다. 이 체험은 보다 더 깊고 한층 더한 계시의 새로운 체험입니다. 그것은 죄의 용서와 정결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오순절에 능력을 부어주시는 오순절의 체험입니다.

고넬료의 집은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의롭게 함과 성결케 함을 얻고 있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0:2) 경건한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서는 저들이 가진 모든 빛 가운데서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저들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곧 온 유대에 전파된 말씀을 너희도 알거니와" (사도행전 10:36-37) 라고 한 그 말씀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5:9에서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 하셨느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본래의 뜻이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확실한 행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곧 이 사람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의롭게 되고 성화 되었었다는 것은 명확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에게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그때까지 고넬료가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도행전 15:11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Shall be saved) 믿노라" 고 한 말씀이 사도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저가 구원을 받지 못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께서 마가복음 13:13에서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Shall be saved)" 라고 말한 말씀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단 한번의 은혜의 역사로 그것을 다 받지는 않았습니다  

사도들이나, 바울이나. 에베소인들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고넬료의 집이나 기타 어떠한 사람이라도 단번에 그리고 동시에 신생하고 성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곳은 없습니다. 사도들과 오순절 때의 성도들이 두 번째의 은혜와 첫 번째의 은혜를 받았는지 잘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저들이 오순절 전에 이미 이 두 가지 은혜들을 받고 있었다는 것만은 명백합니다. 어디서 그리고 언제 받았느냐는 것은 지금 그 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성서 안에서나 또는 성서 밖에서 어떠한 선지자나, 사도나, 순교자나 개혁자가 회개할 때 한꺼번에 원죄로부터 깨끗함을 얻었다고 기록한 것을 읽어보지 못 합니다. 수천 수만의 하나님의 사람들의 간증은 분명한 은혜의 두번째 역사에 과하여 선언하였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사도 시대로부터 가장 지성적이고 가장 영적이며 가장 하나님을 높인 성도들이 많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이중의 속죄가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서는 피와 기름의 이중적 사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죄의 이중적 성격 곧 자범죄와 원죄에 대한 이중적 속량과 성령이 모든 죄를 없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29:1-21)

제물들은 은혜의 두 가지 역사를 가리킵니다  

제물에는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이 있었습니다. 속건 제물은 그 제물을 가져온 사람의 개인의 범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6:1-7)

그러나 속죄 제물은 부정과 죄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개인을 위해서 뿐 아니라, 대중을 위해서 드렸습니다. (레위기 9:1-24, 히브리 13:12-13)

세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 1:29)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시는 예수의 속량하시는 공로를 지적한 것입니다.

번제물은 헌신을 상징하였습니다  

전체로 드리는 황소 또는 수양은 먼저 외부와 내부의 부정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출애굽기 29:17-18, 38-39) 번제물은 속죄 제물에 곧장 뒤 따라서 드렸습니다. 속죄 제물과 번제물은 한꺼번에 가져왔으며, 헌신을 나타내는 번제물은 마음의 정결을 나타내는 속죄 제물을 드린 후에 곧장 드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완전한 헌신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원죄가 우리 심정에 남아 있는 한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할 수 없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누구든 오해해서는 안될 줄 압니다. 회개할 사람은 누구나 다 모든 죄에서 정결해지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데까지 자신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번제 물로 상징된 보다 더 충분한 헌신은 속죄 제물로 상징된 것처럼 내재하는 피가 제거된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제단은 결코 제물을 정결케 할 수 없었으며, 그 제물은 제단에 가져오기 전에 깨끗이 씻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2:11-2의 말씀과도 일치됩니다. 그 모형에 따르면 깨끗이 한 뒤에 곧 이어서 분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깨끗해진 마음은 정결해진 또는 할례 받은 마음을 뜻합니다. 할례 받은 마음이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30:6)

이와 갈이 마음이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지고 사랑에 완전하기란 불가능하며 따라서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질 때에만 비로소 온 영혼의 본성은 마치 나침이 남극과 북극으로 향하듯 하나님을 향해 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그 말은 어딘가에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형제들이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는 그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면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그와 같

은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로마 12:1)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23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그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1:3-4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울은 다음 서간인 데살로니가 후서 1:3-4에 기록된 것과 같은 명령을 했습니다. 만일 저들의 마음이 깨끗이 씻기어 있었다면 그들은 아주 자연적으로 구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의 성화를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는 마지막 날 저녁에 기도하시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하셨습니다. (요 17:17-19)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저희를 위하여" 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거룩하게 한다" 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 원어는 거룩하게 만든다. 정결케 한다. 성별케 한다. 깨끗케 한다. 분리시킨다. 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요한 복음 17:19에서 이 같은 말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관하여 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말씀으로 거룩해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곧 자신이 말씀입니다. (요한 8:31, 32, 36참조) 죄로부터 자유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를 통하여 옵니다. (요한 1:29, 누가 1:74-75)

이 제자들은 그의 교회였고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정결해져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베소서 5:25-27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말씀은 교회에 관해서 곧 구원받지 못한 자에 관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 불러 낸 사람들인 "에클레시아" 즉 자기 자신에게 바쳐진 깨끗해졌고 거룩한 교회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 "옛 사람"을 파멸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6:6은 분명하고 명확하며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두 가지 체험 곧 은혜의 두 가지 역사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란 말씀 중에서 옛사람, 죄의 몸은 다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받은 죄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책형은 순간적인 사망을 뜻하지는 아니합니다. 물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순간은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참으로 우리 자신이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게 된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옛 사람"은 사형 선고 아래 있는 고로 법적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범죄하는 모든 활동은 그쳐집니다. 그 생활 은혜 그리고 신성케 하는 신앙이 옛 사람을 십

자가에 못박아 버립니다.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 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망이나 파멸이 아닙니다. 사망은 결과이며 이것은 사망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려 함이니"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죄의 몸이 멸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멸하려 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죽는 다는 말보다도 더 강한 "멸한다"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아주 걷어치우는 것,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주께서는 우리가 옛사람을 지니고 다니며 마치 죽은 것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은 우리가 중생했을 때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것은 그 옛 사람이 단지 죽도록 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아주 제거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의 책형은 육체적으로 못 박히는 순간에 곧장 죽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죽음이 오기까지는 얼마 가량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길고 짧고 간에 중생과 성화 사이에는 얼마 가량의 시간이 지나갑니다.

신자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즉시로 죄 또는 옛 사람의 지배로부터 구출됩니다. 그는 이제 지체를 통치하거나 조종하지 못합니다. 신자는 범죄한 것과 죄의 능력으로부터 구출되었습니다. 신자들은 이제 죄를 짓지 아니하며 그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한 일서 3:9) 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한 일서 5:4) 고 한 것처럼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한 일서 2:29) 고 말한 것처럼 의를 행하는 자도 됩니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로마서 6:6)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얻을 뿐 아니라, 죄의 본질 또는 본성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 란 말의 원 뜻은 죄를 억누른다거나 법적으로 죽은 것처럼 간주한다거나 할뿐이 아니라, 멸하여 버린 것이며 그것은 아주 패해 버리고 전연 없애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지배나 통치로부터 해방된 것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힘(칭의)과 죽음 또는 파멸(성화)이 같은 순간에 동시적으로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서의 명확한 가르침을 왜곡하는 일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체험과도 반대됩니다. "옛 사람"은 구원하는 신앙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순간 법적으로 죽지만 실제적으로 죽어 멸하는 때는 그 후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간적으로 그 역사를 마치실 수 있습니다  

능력에 관한 한 만일 그것이 그의 계획과 말씀에 일치된다면(물론 그렇지 않지만) 하나님은 의롭게 하고, 거룩케 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들을 같은 순간에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주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에 제한은 없지만, 그러나 받는데 있어서 인간은 무능력합니다. 진리를 지적으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게시되어지고 영적으로 또한 적합하게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2:9,10) 하나님은 정결해져야 할 자신의 필요를 의식하지 못하는 가엾은 잃어버린 영혼은 용서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만일 정결해지지 못하면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병고침이 속죄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이사야 53:4, 마 8:17) 만일 그가 병고침을 받지 못한다면 사죄함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한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가 사죄를 위하여 그를 신뢰할 때, 그는 완전한 사죄를 하십니다. 우리가 정결해지기 위하여 그를 신뢰하면 그는 완전한 정결을 주십니다. 혹 우리가 병이 낳기 위해 전적으로그를 신뢰하면 그는 완전하게 병을 고치십니다. 영원히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로 서 있으며,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그대로 될 것입니다.

(1)의롭다 함을 얻음에 있어서는 중생케 하는 신앙의 힘이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영혼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져온다. 그것은 성령에 의하여 증거되어지며 (로마서 8:15-16, 고린도 전서 2:12) 또한 생활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갈라디아서 5:22)

(2)성화에 있어서는 완전 성화를 가져오는 신앙의 힘이 영혼 안에 아주 존재할 수 없도록옛 사람을 멸절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을 때 부여받은 영의 완전케 하는 은혜의 장애물을 제거한다.  

구약의 모형들은 성화를 가르칩니다  

구약에 있어서의 "할례"는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으로써 성서 안에서 가장 명백하고 보편적으로 인정된 모형입니다.

골로새서 2:11-13절에 보면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할례는 깨끗케 하는 것 또는 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결코 중생에 있어서처럼 죽은 것이 되살아 나는 일이 없습니다. 성서는 죽은 사람들이나 죽은 사람들의 마음에 할례를 베푼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할례가 거듭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여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누가 10:27)고 하신 계명에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모형은 첫째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할례는 아기가 출생한 후 여드렛(8일) 만에 베풀었습니다. 그 아기는 할례를 받기 여드레 전에 그가 후에 성별되지 않으면 안될 상태로 낳았습니다. (시 51:5및 사도행전 7:8 참조) 그처럼 영적으로도 그가 깨끗하게 되고 완전히 거룩해지기 전에 거듭나야 합니다. 주는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중생하여 먼저 생명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골로새서 2:11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할례"는 할례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할례의 원형입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렛 만에 할례를 행하고" (사도 행전 7:8)

신명기 10:16에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 하였고, 로마서 2:29에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하나님에게서니라" 한 것처럼 저들은 그들의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 는 말이 원문에는 "마음의 표피에 할례를 받으라" 고 되어있는데 이 마음의 표피란 죄의 몸(로마 6:6), 육적 몸(골로새 2:11)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을 제거하는 것은 저들이 신명기 10:12의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고 하신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필요했습니다. 이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신명기 30:6)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화 되었습니다

이 할례의 인은 그가 신앙으로 행한 약 25년 후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대한 단지 어떠한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영적인 의미는 그의 마음에서 이루어져서 그의 생활 가운데서 표현되었습니다. 창세기 17:1에 하나님은 그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고 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은 후 모든 소유권 주장(창세기 12:l0-11)과 종교적 음모(창세기 16:1-6)는 없어지고, 순직하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7:1-22)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는 것은 완전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높은 표준에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마음이 완전히 깨끗한 것과 하나님께 대하여 정신의 완전한 자세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라" (로마 4:11)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은혜의 두 가지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할 때에 전적으로 사랑이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널리 베풀어지며, 생태적인 죄가 파멸하는 성화에 있어서 마음은 사랑으로 온전해집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의 온전한 경험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있기 전에도 이미 사랑은 있습니다. (요한 일서 4:18)

주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은혜의 두 가지 역사에 관하여 가르쳤습니다. (요한 일서 1: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했는데, 우리는 깨끗하게 하는 것은 빛 가운데 행함으로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있게 된 후(의롭다 함을 얻은 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있으며, 이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모든 생태적인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의외의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요한 일서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역사 곧 죄를 사하시는 것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이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죄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범죄(실제적 죄)는 사함을 받아야 하며, 불결 또는 불의 (원죄)는 깨끗하게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함을 받아야 할 범죄는 자백하여야 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할 불결도 역시 자백하여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라" (데살로니가 전서 4:3) 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교도 가운데서 구원받았는데, 음란은 이교도들 가운데 있어서 가장 일반적 적이고 널리 퍼진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그처럼 빽빽하게 저들의 사방에 둘러싼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완전히 거룩해지고 성결 안에서 굳게 서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12-13) 사도 바울은 음란한 죄를 범하는 이교도에게는 회개하고 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화는 신자들을 위한 것이며 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굳게 서기 위해 전에 범했던 것과 같은 죄에 대한 내적인 경향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 5:1-2)  

은혜의 역사는 하나 밖에 없다는 가르침은 큰 해를 가져옵니다  

이 신앙으로부터의 이탈로 인하여 이 위험한 시대에 바다 위의 많은 난파를 증가하였고, 타락과 가짜의 체험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역사" 를 주장하는 이단설의 부흥은 말세의 강한 미혹의 하나입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으리라" (디모데 전서 4:1) 이 마지막 날에 미혹이 밀려 닥침으로 많은 사람이 미혹을 당하며, 그 중에는 우리가 결코 그렇게 되리라고 예기하지 않았던 사람까지도 동요 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며, 그보다도 더 그들이 많은 양떼를 그들과 함께 이끌고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전에는 완전히 거룩케 하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알았던 사람들이 그처럼 쉽게 그 교리를 버리고, 그러한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 교리를 가르치며, 모든 죄에서 깨끗해지고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아는 사람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체험을 위해 주님을 찬양하는 일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두 번째 은혜(늦은 비)의 역사의 시초에 있어서, 그들의 교사들로부터 그 은혜를 구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후 수주일 또는 수개월이 되어, 후에 은혜의 두 가지 역사를 체험한 것을 간증하니까 같은 많은 교사들이 둘러보면서 같은 사람들을 향하여 자기들의 가르침과 그 사람들이 구하고 또 두 번째 은혜를 받았다고 증언한 것은 모두 틀렸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같은 그 영혼들은 그 간증을 개조하도록 인도되었고, 저들이 전에 얻어서 즐겼다고 간증한 것을 믿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그 자체에 있어서 영혼이 표류하고 또 약속의 참된 파악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데 넉넉합니다. 또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한 번밖에 없는 은혜의 역사의 이론을 말하는 어떤 탁월한 교사들은 비성서적인 죄의 근절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육욕적 경향이 발생한다고 고백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들은 완전히 성화되었고, 또한 성령의 세례도 받은 것이라는 미혹으로써 계속 격려합니다.

구하는 사람들에게

만일 여러분이 사죄, 곧 실제로 범한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완전히 깨끗케 하고 모든 생래적인 죄로부터 정결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오십시오. 성령은 의롭다 함을 얻은 모든 영혼에게 안에서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마음을 가지기 원하는 갈망을 넣어 주십니다.

그의 마음은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7) 고 부르짖습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생래적인 죄로부터 깨끗이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불은 떨어져서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하고, 여러분은 온전한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의를 위해 영혼에 이 갈망을 주시고, 여러분이 헌신할 때에 그 불이 여러분의 제물 위에 떨어집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두 가지 은혜의 역사 곧 칭의와 성화를 여러분의 생명 속에 성취하실 것입니다.

다음에 그 영혼은 봉사를 위한 능력, 곧 성령의 세례와 불을 열망하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정결한 마음에다 자기를 위해 증거하도록 하늘의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8) 하나님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우리들이 해야할 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요한 14:12) 우리는 지금 마지막 성령을 부어 주시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발아래 엎드려 주님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능력을 부르짖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주실 것입니다. ko.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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