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 홈 >
  • 설교/간증/교리 >
  • 교리
교리
그리스도인의 용서 운영자 2019-04-2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956

http://apostolicfaith.kr/bbs/bbsView/21/5576038

그리스도인의 용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예수님의 두 가지 큰 기본교훈이다. 참그리스도인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과 형제를 대하여 오래 참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5:7) 소위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도 누가 자기에게 조금만 잘못하면 사랑을 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원수까지 사랑하여 오래참고 용서해 주라고 가르친다.

스페인의 옛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적인 행위요,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인간적 행위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신적 행위이다."

예수님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 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3-48)

이 말씀은 흔히들 기독교 문학 중 걸작이라 일컫는 산상보훈의 일부이다. 지금까지 모든 면에 지혜있는 사람도 이 산상보훈에서 가르치는 「신자의 표준」에 필적할만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표준으로 측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여러 해 동안 남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 원한의 대상자가 가족인 자도 있고, 사업의 동료나 경쟁자인자도 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성도는 구원받기 전에 어떤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였든지 만일 그를 길에서 만나면 대면하기조차 싫어서 길을 건너 다른

편으로 도망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서로 이와 같이 미워하여 고소까지 하고 법정에서까지 서로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니, 그는 제일 먼저 고 상대편에게 가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서 사과하고 보상해 줄 것을 보상해 주고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받으시고 용서해 주셨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승리의 생활을 한다는 신앙간증을 해주었다.  

변명은 소용없다  

성경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원한이나 악의나 앙심이나 혈기를 용납지 않는다. 당신이 잘한 때도 있고 잘못한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당신이 잘 했다 할지라도 상대편을 용서해줄 마음이 없으면 죄인과 세리와 똑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거니와" (마 6:14-15)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18:6-7) 우리가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용서해 주어야 하나?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18:21-22)"

490번 ! 만일 누가 당신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면 당신은 아마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용서해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해 줄 때 "그러나..."를 원치 않으신다. 어떤 이는 누가 나에게 잘못하면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해 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하고도 신자라고 자처할 것이다. 그러나 용서해줄 마음이 없으면 주를 만날 준비를 못한 것이다. 일곱 번씩 70번 !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용서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원수를 용서해 주고, 나를 조롱하고 핍박하는 자를 용서해 주면 천부의 상을 받게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자만 사랑하고 도와준다면 세리와 죄인보다 나은 것이 조금도 없다. 그들도 그와 같이 한다. 용서란 구원 계획에 있어서 참으로 영광스럽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므로 우리를 용서하신다.

기도에 장애 되는 것

말을 잘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것이 신체상의 장애임과 같이 우리의 기도에도 장애 되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경고해 주셨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니라 하셨더라" (마가 11:25-26)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으려면 남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는 한 하나님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지 않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불가능한 일이다. 물질적인 면에도 불가능한 일이 있음같이 영적인 면에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 만일 우리가 누구에게 혐의가 있으면 천부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구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그 일을 바로 하지 않는 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옆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되면 주의 길로 행하게 되며 얼굴을 위로 향하게 된다. 이는 죄를 자백하여 용서를 구하고 인간 사이에 잘못한 것을 바로 하는데서 온다.

화목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누구에게 잘못이 없을지라도 누가 우리에게 혐의가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원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 하리라" (마 5:23-26)

성경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 하라는 것과 어떠한 손해를 볼지라도 화목하며 보상해 주라는 것을 가르친다. "화목은 내가 할 바가 아니다" 고 할 자도 있을 것이나, 만일 그 일이 우리와 관계된 일이면 우리가 먼저 화목을 구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화목을 구하고 보상을 해 주고 고백을 해도 상대방이 받아 주지 않고 화목을 거절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후까지 다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나머지는 처리해 줄 것이며, 나는 깨끗하게 된 것이다. 내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구하고도 화목을 얻을 수 없으면 그 나머지 일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화목을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자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 형제와 화목을 이루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없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태 18:15) 만일 누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거나 잘못한 일이 있어도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내지말고 직접 그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과 단 둘이만 앉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을 흠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흠담은 무서운 것이며 잔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고 허탄한 데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남을 흠담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신다.  

관용과 오래참음  

성경은 선으로 악을 갚을 것을 강조한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7-19-21)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활을 다스리고 우리의 걸음을 의의 길로 인도하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그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로마서 14:13)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각기 성격과 모양이 다르고, 사귀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부족을 보아서는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용서해 주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나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용과 사랑과 오래참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길을 방해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다윗은 이와 같이 말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선하고 아름답고" (시 133:1)

이 사랑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울 때 그의 머리에 바른 기름과 같다. 만일 우리의 영혼에 이 거룩한 기름이 넘쳐흐르면 서로 동거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은 흔히 상대편의 말과 행실을 보고 오해하여 적개심을 가지는 수가 많다. 우리는 상대편의 행위를 보고 좋게 말하고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큰 모범  

죄없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의 큰 모범이다. 그는 억울하게 고소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운명 직전의 그 최대의 고난 중에도 자기를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하나님의 백성들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예수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는 죄인들이 그와 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해도 참으셨다. 우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했다 (히 12:3-4). 이 말은 우리가 누구를 대하여도 마음에 불평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히 12:14-15).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계속하여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되려면 우리가 남을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하고, 겸손과 온유로 항상 주를 따르고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한다(엡 4:2-3).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위한 성결 운영자 2019.04.25 0 1057
다음글 세례 운영자 2019.04.25 0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