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문제 | 운영자 | 2019-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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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문제 바리새파의 모순된 점이 말세에 부활됨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땅에서 성역을 하시는 중, 그 당시의 종교가들이 계속하 여 예수님께 들고 나온 것은 구약의 안식 문제였다. 그와 같은 극단의 율법 존 중주의 힐문자들의 논쟁의 골자는 유대인 안식일의 준수 문제였다. 외식자들은 율법의 더욱 중요한 부분인 심판과 자비와 믿음을 가볍게 여겨 버 리고, '안식일' 만을 율법에 대한 그들의 개념과 해석대로 지켜야만 한다고 하는 데,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누구나 저주를 당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시대 즉 은혜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율법이 지나가게 된 사실 을 성경에서는 너무나 많이 증거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근대 유대주의 자들은 여러 세기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확실히 밝혀놓은 옛 모순점들을 다시 파내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는 이론을 지시하고 있다. 이들 은 그 시조와 꼭 같이 유대인 안식일을 논쟁의 골자로 삼고 있다. 그들의 주장 을 들어보면 이와 같다. '구약의 안식일 즉 주간의 첫 날이 아닌 마지막 토요일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 의 표를 받은 자이니 악한 자와 꼭 같이 멸절되리라' 안식교는 '지옥' 이란 말을 그들의 신조에서 제해 버렸다. 지금 이 마지막날에 거짓 교단의 무리들이 대단한 열심과 간교한 행동으로 그들의 설을 선전하므로, 많은 순진한 성도들이 미혹을 받고 있으므로 그들이 이 교성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신조에는 여러가지 거짓교리가 포함되 어 있으나, 그들은 안식일 문제를 특기로 삼아 있고, 또한 이 안식일 교리 변론 에 그들의 전 생명이 걸려 있으므로 이 문제를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연구해 보 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면밀한 검사를 해 보고 그 결과를 살펴보자. 도덕적 율법과 의식적 율법 제칠일 안식교는 먼저 구약 율법을 '도덕적 율법' 과 '의식적 율법' 으로 구분 한다. 이 용어는 그들에게 있어서 아주 편리한 척도가 된다. 그것을 성경에 나 타난 모든 문제에 적응시키면, 그들의 목적에 따라 편리한 대로 모든 율법을 '도 덕적 율법' 혹은 '의식적 율법' 으로 구분한다. 그들은 십계명이 도덕적 율법의 총화라 하고, 이 계명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것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다시 설명하기를 성경에 기록된 율 법으로 끝나는 율법은 의식뿐이라 한다. 예를 들면 성전에서 제사 드릴때 사용 하는 의식과 제사등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을 발판으로 삼고 아주 현명하게 논쟁을 시작하여 안식일에 관 계된 제 4 계명은 10 계명중 한 계명이므로, 이 계명 역시 영원해야 하며, 변경 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이 모든 말은 아주 이론에 타당한 것 같이 보인다. 특 히 도덕적 율법과 의식적 율법을 모두 구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으므로 더욱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을 쓴 사람중 한 사람도 두가지 율법의 한계선을 긋지 않았다. 성경 그 어디에서도 '도덕적 율법' 과 '의식적 율법' 이란 말을 찾아 볼 수 없 으며,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용구를 사용한 곳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과 신 약을 기록한 자들은 자주 모세의 책과 선지서의 말을 인용하며 율법을 논했다. 그러나 그것이 '도덕적 율법' 이라거나 '의식적 율법' 이라고 하지는 않았고 그냥 율법이라고만 했다. 나는 율법이난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 려고 왔노라고 했는데, 우리도 안식교도들과 같이 구주 예수님께서 '의식적 율 법' 만을 성취시키셨도다 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도 바울이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 을 성취 시키셨고, 또한 그렇게 하심으 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모든 율법' 의 마침이 되셨 다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 . . ." 라고 한 것은 분명히 율법을 총망라 한 말이다. 고로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율법이란 말은 도덕적 율법, 의 식적 율법, 민법을 총망라한 말이다. 고로 이와 같은 도덕적 율법과 의식적 율 법으로 구분하는 설계는 순전히 인간 조작의 책략이요, 안식교도들이 그들의 특 기 교리의 목적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율법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속량하여 낸 때로부터 하나님은 전적으로 그의 택한 백성만 관계하셨고, 다른 민족은 어는 정도 거리를 두고 관계하셨다. 열방들의 사건들도 이 대 구출(출애굽 사건) 에서 일어나게 된 것인데, 이 대 구출은 이스라엘만 관계한 것이지 다른 민족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였다. 이 대 구출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월력은 변경되어 "이 달(아빕월)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라고 했다. (출 12:2) 율법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근거하여 준 것이니 곧 "나는 너를 애굽당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는 말이다 (출 20:2) 주간 안식일로 별도로 특별히 설정하고, 그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그들의 구 출을 기념하는 뜻에서 지키라고 했다. (신 5:14-15) 실로 율법 문제에 곤한 성경의 전 요지는, 그 율법은 전적으로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세운 것이다. 고 로, 율법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국가를 형성할때 그들에게 필요 한 도덕적, 의식적, 민법을 설정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 운 언약으로 통한다. 즉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있는 우리와 세 우신 것이라." (신 5:2-3) 율법은 다른 그 어떤 국가에서도 가한 것이 아니다. 만일 안식교도들이 말하는대로 구약의 율법이 오늘날 우리들까지 얽어매는 것이 라면 신약에서나 구약에서나 이방인까지 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어야 할텐데, 어디에 그렇게 명한 것이 있으며, 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라도 암시 정도라도 한 곳이 있는가? 오히려 반대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한 것을 보면,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신 4:8)라고 했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한 번 예루살렘에서 바로 이 율법 지키는 문제를 위하여 회합을 가졌다. 그 이유는 그때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 인 중에서도 역사하사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한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 서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하느냐?" (행 15:10)고 말을 하고, 이 문제를 종결지웠다. '율법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 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 2:14)라고 했으며, 율법 자체의 본질에 서도 그 증거를 볼 수 있다. 어떤 조항에 있어선 순전히 그 지방적인 적용만 가능하고 만국적 적용은 불가능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의 하루 는 태양으로 측정하는데,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레 23:32)였다. 안식교도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일출에서 일몰까지로 계산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극지방에 있는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일 년중 몰의 횟수가 빈번치 못한데, 그럼 그 나라는 무엇을 표준하여 지키란 말인가? 안식교도들이 애용하는 성구 하나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그치면 모두 범 한자가 되나니' ( 약 2:10) 그리고 그들이 정말 안식일 성수문제를 정확히 지키 면 그 날에는 불도 피우지 말아야 한다. (출 35:3) 그렇다면, 영하 수십도에 사 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법을 지키겠는가? 그리고 안식일을 한 번만 범해도 사 형에 해당한다. (민 15:32) 고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누가 사형집행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의문되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 아 빕월, 15일의 추수 첫 곡식의 절기등 정해진 모든 유대인의 절기는 팔레스틴의 독특한 계절에 의하여 매주의 안식일과 같이 지킬 의무가 있는 거룩한 안식일이 다. 고로 만일 안식교도들이 그들이 말하는 의미대로 진정한 율법에 거치지 않 FONT FACE="바탕">으려면, 그들의 추종자들은 모든 지구의 북쪽 위도상에 사철동안 살아야 하며, FONT FACE="바탕">팔레스틴의 기후와 비슷한 기후에 살아야 할 것이며, 만일 남쪽 위도상에 살다 보면 그들의 법에 역행이 된다. 위에 열거한 성구와, 지금까지 제시한 사실을 종합해보면, 율법이란 유대인에 게만 준 것이라는 사실에 결론을 지을 수 있으며, 순전히 지역적이며 다른 민족 에게 지킬 의무를 지우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폐지된 옛 언약 이스라엘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호렙산에서 주신 언약을 어겼으므로, 하나 님이 이스라엘 집과 새 언약을 맺을 것을 약속 하셨으며,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해 주시리라고 하였다. 이 약속은 예레미야 31장 31절-34절에 기록되어 있 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필자는 8장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인용하고, 예레미야 가 말한 "새 언약"이란 복음을 가르쳐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구약의 말씀을 비 교하여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셨으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 8:13)고 했다. 이제 문제는 무엇이 없어져 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도들은 의식 적 율법이 없어져 간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첫 언약 - 즉 호렙산에서 주신 율법인데- 위에서 말한대로 율법이란 전체를 말하므로 도덕적 율법과 의식 적 율법과 시민법등을 총망라한 것이다. 이것이 없어져 가는 것인데 호렙산에 서 이스라엘에게 전한 율법의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이 율법중에는 돌비에 기 록한 십계명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확증하였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되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은 즉 길 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가운데 있느니라' (고후 3:7,8,11) 사도 바울이 이와같이 쉽게 설명해 주었는데도, 돌에 써서 새긴 십계명이 복 음시대의 시작과 동시에 지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십계명에 명시된 원리가 오랜 기간 동안 모든 도덕률의 기본 바탕이 되어 왔으며,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하다. 그 이유는 계명 자체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나간다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함과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 구약에 기록된 바로 그 형식 즉 '돌에 써서 새긴 그대로'를 말한 것임을 알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십계명에 나타난 모든 도덕적인 원리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 오래전에 이미 존재 한 원리이며, 율법이 폐지되고 새 언약이 왔다고 하여서 그 계명이 나타난 그 원리에는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원리가 더 보강 되었으며, 그 원 리는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옛 율법이 폐지됨에 따라 십계명 도 역시 지나갔으며 따라서 유대인의 안식일을 말하는 4 계명도 지나갔다는 사 실을 확증할 수 있다. 이 사실은 호세아 선지자가 안식일을 그칠것이라고 예언 한데서 더욱 확실히 되었다.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 든 명절을 폐하겠고" (호 2:11) 새 언약 옛 율법이 지나감과 동시에 십계명도 지나 갔다면 새 언약에 있어서 어떤 도덕 적인 교훈을 지킬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아래에 나열한 성구를 보면 십계명이 모두 신약에서 재확인되는데, 어떤 것은 더 강조되었으나, 제 4계명만은 뚜렷하게 제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약에는 한 곳도 유대인의 안식일이 재확인 된 곳이 없다. 반대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주저없이 안식일을 어기고 그들의 행위를 변호하여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막 2:28)고 하시므로, 안식일을 정하신 자는 안식일을 폐지할 수 있 다는 사실을 암시하셨는데, 실로 그는 안식일을 새 언약에서 폐하셨던 것이다. 안식교도들은 그럼 신약 어디에서 주간의 첫날을 지키라고 했는가? 고 반문한 다. 그럼 우리도 그들에게 동일한 형식의 말을 물을 수 있다. 신약 어디에 주간의 마지막날을 지키라고 명한 곳이 있는가? 이제 여기에 구약 계명과 새 언약 중에서 재확인 된 것을 나열하여 비교하로 하자. 그런데 제 4계명의 자리에 가서 신약에서 재확인된 자리는 완전히 공백 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약에는 그 어디에도 제 7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한 곳이 없다.
결론적으로 새 언약의 시대로 들어옴과 동시에, 구약에 기록된 모든 유대인의 제도 즉 의식법, 민법등과 희생, 제사, 절, 안식일등이 모두 폐지되었다. 신약의 요지 특히 서신서의 요지가 우리는 이제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자라는 우리의 주장을 확정해 준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느니라." (롬 10: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16:16) 은혜 아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돌비에 새겨 기록하지 않고, 마음판에 기록하여 새로운 법이 시작되었다는데, 곧 사랑의 법이라. 이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롬 13:10) 율법주의자를 책망함 성경은 율법을 은혜의 자리에 대치하려는 사람과,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한 자를 다시 얽어 매려는 사람들을 무섭게 책망한다. 예수님께서 심한 책망의 말씀을 하신 것은 율법의 미세한 점을 계속하여 되풀이하고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율법주의 바리새인에게 한 것 뿐이다. 일반적인 죄인들에게는 동정만을 보였으나, 바리새인들에게는 가장 날카로운 책망을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예수님께서 이러한 책망을 발하신 것은 은혜의 날이 완전히 동트기 전이었으며, 율법이 아직 어떤면에 있어서는 강요되고 있던 때였다. 그 때에도 예수님께서 그러한 책망을 발하셨다면, 하물며 이 영광이 밝히 나타난 지금에 와서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을 강요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와 같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무서운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라." (갈 1:8) 바울이 갈라디아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그 복음을 받았으나, 그 후에 유대주의자들이 와서 가라지를 뿌렸으니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 같이, 어떤 사람이 가만히 와서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갈라디아인들은 그 유대주의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 결과로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누가 너희로 진리를 따르지 못하도록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 3:1-2)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율법에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 바울은 또한 더욱 강하게 말하였다. "무릇 율법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고로, 안식교도들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으로 돌아 갈려면 일부분뿐만 아니라 모든 율법 즉 도덕법, 의식법, 민법등을 모두 정확히 지켜야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이 뚜렷한 성구들이 말하는 사실은, 은혜시대와는 전율법이나 일부 율법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했으니, 율법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재생함을 받지 못한자는 육신의 연약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명한대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으며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은 전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분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율법의 의를 보존키 위해서, 또 다른 법을 마련하게 되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며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쫓지 아니하고,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4) 그러나, 율법에 관한 말이 그렇게 나타나 있고, 그렇게 신랄하게 율법주의 자들을 책망한 말이 나타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까지 많은 유대주의 자들이 돌아다니며 모세가 말한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한다. 사도 바울이 특히 안식일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말했는지 알아보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논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6) 이 말을 자세히 보면 사도바울은 현대 유대주의자들을 잘 알고 지적한 것 같이 보였으며, 그와 유사한 이단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바울 시대의 율법주의자들은 그 당시에 율법과 복음을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잘못을 변호할지 모르나, 이제는 신약으로 완성되고 이와 같은 논쟁이 한 번 종결되기까지도 했다. 현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대 앞에서 죄상이 들어날 때, 어디에 설 것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만적으로 가르치고, 간계를 쓰고, 현 기독교를 크게 훼방하고, 많은 신실한 신자들의 믿음을 파손했으니 무죄하지 않을 것이며 정죄함을 당할 것이다. 그들의 교리는 이 말세에 있어서 가장 마귀적인 미혹중의 하나이다. 주의 날 이제 그리스도인이 왜 주간의 첫 날인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키는가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 보자. 첫째로, 이날은 구약에 이미 예서되어 있다. 레위기 23장 9절로부터 12절에 곡물의 첫이 삭을 드리는데에 대한 교훈이 나타나 있고, 부활에 관하여 논한 곳에서 첫 이삭의 뜻을 우리에게 밝혀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첫 이삭의 헌물에 대한 율법을 완성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어느날에 부활하셨던가? 안식일 이튿날이었다. 여기에도 주일을 지키는데에 대한 성경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날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만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날이 아니다. 새창조를 상기하게 하기 위하여 세운날도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옛 것을 꼭 지키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도록 버려 두는편이 낫다. 일주일의 첫 날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날이다.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전 그의 제자들에게 여러번 나타나신 날도 이 날이요. 그리스도의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날도 이 날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하여 떡을 떼려고 모인 날도 이 날이요. 주님께 헌물을 가져온 날도 이 날이요. 초대교회 교부 익나디우스로부터 유비우스때까지의 교부들의 일반적 증거대로 초대교회가 주후 100년부터 주후 324년까지 주의 날로 지켜진 날이 바로 이 날이다. 고로 일주일의 첫 날은 콘스탄틴 황제가 '주의 날'로 정한 날이며, 천주교 교황도 이 날을 '주의 날'로 정했고, 그 외 많은 감독들도 이 날을 '주의 날'로 지켰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후 즉시로 이 날이 예배의 날로 정해졌으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이 이 날을 '주의 날'로 지켜왔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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