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하나님의 경제 조달) | 운영자 | 2019-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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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하나님의 경제 조달)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혹은 "천국을 땅위에 세움에 있어서 필요한 경제를 보급하기 위해서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종종 질문을 받는 말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 가를 잘 알아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한복음 13:17) 참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자이다. 우리 집회에서 십일조 문제를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하여 이 문제가 복음 중에서 그렇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십일조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이다. 고로 참 목자들은 이 문제를 바로 가르쳐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임을 성경이 충분히 보여준다. 십일조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제정된 것 어떤 이들은 십일조가 이스라엘에게 준 율법 중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여 우리는 지금 은혜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십일조 법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히브리서를 잘 살펴보면 십일조 법은 히브리 민족이 생기기 전에 이미 지킨 법임을 알 수 있다. 율법을 주시기 600년 전에 아브라함이 살렘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히 7:1-4)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율법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고, 야곱도 율법이 있기 전 하나님께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고 했다. (창 28:22) 유대인의 법에도 지정됨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법을 주실 때, 모세에게 이와 같은 말을 했다.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일이나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사람이 그 십분의 일을 속하러면 그것에 과 오분의 일을 더 할것이요, 소나 양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니라" (레 27:30-32) 여기 기록된 말씀을 주의해야 한다. 십분의 일 "여호와의 것이니 그 십일조는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니요, 여호와의 것이라" 성경 말씀대로 십일조는 여호와의 것이다. 고로 만일 그 십일조를 우리가 쓰면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이다. 유대인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옳은 일이라고 인정하신 사실을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 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23)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할 수 있나? 십일조와 헌물을 자기의 것같이 생각하고 드리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성경에 보면 그와 같은 사람을 도둑이라고 했다. 말라기 3장 8절에서 10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짙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겠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여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이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게 책망의 말을 들을 그때 그들은 십일조를 도적질한 연고로 작물이 말라죽고, 몸에 병이 생기고, 원수에게 압제를 받게 되었다. 사실을 전혀 인식조차 못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나의 두 젊은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사업가였다. 그런데 그들은 십일조를 아주 섬세하게 잘 드렸다. 그들은 큰 건물의 한 칸을 빌려 그들의 영업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그때 대지진이 그 지방에 일어나게 되어 그 큰 건물이 다 파괴되었는데 두 사람이 사용하던 사무실만은 안전하였고, 기물도 하나 파괴되지 않았다. 그들이 그와 같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충실히 십일조를 드린 연고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한다. 100원 중 10원은 여호와의 것 고린도 교인이 합당치 않게 성찬을 행할 때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라고 했다. (고전 11:30) 그들이 성찬을 합당치 않게 행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이 성전에 나갈 때 가진 태도가 이와 꼭 같았다. 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으므로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장난 갈이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땅값을 감춘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행위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행 5:1-10)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충실히 드렸더니 하나님이 그를 크게 축복해 주시므로 그 십일조를 빼돌리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가지 않아 그는 사업에 실패하게 되어 그는 재산을 다 잃게 되었다. 그때야 그는 그 사실을 아내와 의논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다. "하나님이여, 내가 돈을 백원을 벌면 십원은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때로부터 그는 절대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지 않고 꼭꼭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는데 얼마가지 않아 하나님이 다시 축복을 해 주셨다. 교회 유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 십일조는 최초에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이며, 그후 율법으로 계속케 하시고 더 확실히 나타내어 주셨다. 고로 이 법은 완전한 법이며 이 보다 더 좋은 법은 없다. 고로 바울도 이 십일조 법을 재인정하고 확인한 사실을 히브리서에서찾아 볼 수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시작도 끝도 없는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을 인용함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살렘왕 맬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이 십일조를 드렸는데, 하물며 복음시대에 있는 우리는 더욱 그 십일조를 완전히 드려야함이 당연치 않는가?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매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얻는 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모든것이 그리스도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강요는 하지 않으나, 우리는 맡긴 모든 것에 청지기로 되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린 사람은 그가 쓰는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니 십일조를 따로 드릴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과부의 엽전 두 푼 우리는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수입이 아주 적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 그들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서 면제를 받을 수 있나? 그러나 수입이 적은 사람도 많은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은 동일하다.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가운데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옳다 인정하시고 그뿐 아니라 그 과부가 자기의 소유 전부를 드렸다 하시며 칭찬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이 그 풍족한 중에서 연보하는 것보다 그 과부의 연보가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수입이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십일조를 요구치 않는다고 하나,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손해를 본 사람은 역사 이후 한 사람도 없다. 빚 진 것은 어떻게 하나? 십일조를 먼저 드려야 하나? 빚을 먼저 갚아야 하나?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중에 어떤 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에 따라 해답은 자연히 나올 것이다. 이웃 사람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범죄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사람에게 빚이 졌든 하나님에게 빚이 졌든 빚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실로 빚이 다른 그 무엇보다 더 빨리 마음에 정죄감을 가져온다. 주님을 위한 하나님의 경제 조달법 요엘 선지가 예언한 늦은비가 처음나린 1906년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완전하게 나타내게된 우리는 십일조의 법을 그대로 지켜 왔다. 그 이유는 이 법은 성경에 기록된 법이요, 또한 성경은 우리의 안내서이며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십일조의 법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성경적인 경제 조달법으로 믿어왔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일 중에 이 늦은비의 복음으로 나린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없게 되었고, 지금 이 모든 사업은 자라나고 있다. 미국에 있는 우리 본부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광대한 선교사업의 규모를 보고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는가를 묻고 그 경제를 어떻게 조달하는가를 묻는다. 그 답은 바로 이것이다. "십일조와 헌물" 우리교회가 생긴 이후 연보를 거둔 적은 한번도 없다. 우리 교회의 뒤 벽에는 조그마한 연보함 한 개가 걸려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바로 그 함 속에 우리 성도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자발적으로 넣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얼마를 냈다는 기록도 없고, 아무도 누가 얼마를 냈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과 본인만은 안다. 그 누구의 강요나 권면에 못 이겨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실한 마음에서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십일조에 대하여 논하거나 설교한 적이 거의 없다. 하나님이 계획한 이 법을 대치할만한 더 좋은 법이 있겠는가? 물론 요즈음은 교회에 따라 교회 경제를 충당하기 위하여 자선시장에 추첨식 판매, 모금, 연극이나 모금여행을 하기도 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 말씀대로 행할 때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법임을 발견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창고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장 1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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