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홈 >
  • 설교/간증/교리 >
  • 설교
설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운영자 2019-04-26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085

http://apostolicfaith.kr/bbs/bbsView/19/5576352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윤승백 형제의 설교  

    기독도가 가는 길을 흔히 순례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성도의 삶(신앙생활) 자체가 천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순례의 길은 반드시 평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길에는 많은 고생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편안한 삶만을 추구하는 마음으로는 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힘을 주시는데, 그 힘을 힘입은 자들은 감사함으로 넉넉히 이 순례의 길을 찬송하며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존 번연이 지은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가는 베스트셀러인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기독도는 오늘날 천성을 향해가는 우리(성도)를 상징합니다. 무거운 죄짐을 지고 살던 한 기독도가 어느날 십자가 밑에서 자기의 죄짐을 벗고 천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마저도 그 아버지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결코 인정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인정에 끌리는 신앙은 오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가야 합니다. 장망성(장차 망할 성. 세상을 상징함)을 뒤에 두고 천성을 향해 떠나가는 길은 결코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독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길을 무사히 끝까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만, 산 물고기는 물결을 역류해서 상류로 나아갑니다. 기독도는 세상물결을 헤치고 저 높은 곳(천성)을 향해 전진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죽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가는 길에는 그 기독도가 당한 것처럼 방해가 많이 있습니다. 그 방해는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방해가 될 때도 있으며, 자녀들이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또 주변의 일어나는 모든 환경이 우리에게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큰 방해는 자기자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해에 부딪쳐 그 길을 포기하거나 돌이켜서는 안됩니다.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는 자는, 그 승리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즉 묵묵히 이 길을 가다보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영혼이 하나 둘씩 자신의 편에 붙게 됩니다. 물론 그 영혼은 하나님이 자기의 동역자로 주신 영혼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세상 그 어떠한 풍파도 우리의 순례의 길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가룟유다를 살펴보면, 우리가 천성가는 길에 있어서 많은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똑 같은 조건으로 예수님과 함께 천성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그 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즉, 가룟유다는 많이 배운 자로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욕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이 구세주로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대적들에게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욕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언제든지 예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한 저녁식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서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든 제자들이 놀라서 서로 "내니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때 가룟유다도 시치미를 뚝 떼고 다른 제자들처럼 "내니이까"라고 형식적으로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마 가룟유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나를 팔자가 바로 너다"라는 예수님의 그 같은 경고의 말씀은 마지막으로 유다에게 주는 주님의 사랑의 말씀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직접적인 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말씀은 능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능력의 말씀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그러한 주님의 마지막 사랑마저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는 마지막 남은 회개의 기회마저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판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일자 무식한 어부출신으로서, 성격이 불같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성격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밤에, 자신만만해 하던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일 새벽 닭 울기 전에 나를 3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결코 베드로를 창피주거나, 미워서 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너무나 사랑한 주님의 마지막 경고와 주의의 말씀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가룟유다와 같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깨닫고는 산으로 올라가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회개하여 다시 은혜를 회복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예수님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며, 복음을 능력있게 전하다가 순교를 당한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했다는 점에서는 똑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습니다. 즉 회개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엄청난 대조를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위력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길 중에 하나를 반드시 가야 합니다. 중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멸망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베드로와 같이 영생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성도의 천성을 향한 순례길에는 실패도 많고 각종 사단의 시험과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가룟유다의 길로는 갈 수 없습니다. 이 길이 힘들다고 도중에서 포기하거나, 샛길로 빠지면 우리의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힘들더라도 성도라면 베드로의 길로 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비록 부족하고 실수가 있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헌신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그 길을 가는 자는, 영생의 면류관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복된 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죄악된 것이라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결코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이 믿음의 길에서 후퇴해서도 안 됩니다.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모두가 저 높은 천성을 향해 앞만 보고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윤승백 형제는 서울교회의 담임목사임.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외식의 위험 운영자 2019.04.26 1 1135
다음글 유혹을 이기는 길 운영자 2019.04.26 0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