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 문제 | 운영자 | 2019-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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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문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옛말에 "의복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옛날과 같이 지금에도 그대로이다. 사람이 아무리 외부를 잘 꾸미고 닦는다 해도 내적 상태는 그대로 있는 법이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바리새인을 보고 외적으로 아름답게 꾸몄지만 속으로는 송장의 뼈가 가득하다고 책망 하셨으며, 또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6-27)고 하셨다. 사람은 외모와 의복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외적 장식이 내부를 장식치는 못한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자마다 먼저 예수의 보혈로 마음의 정결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신령한 성품의 장식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그리스도의 체험중 첫번째의 체험만 받아도 그 생활이 변화되는데 이는 사람의 외적 생활과 행동은 내적상태의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 이 되면 "옛것은 지나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전날에 사랑하던 것 중 미심적은 것은 사랑치 않게 되며 세상의 것들을 주장하는 오만심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그의 욕망은 새롭게 되고 그가 애착하는 것은 하늘의 것들이다. 우리 교회의 초대 목사님은 이 중요한 제목에 대하여 가르칠 때마다 적중한 예화를 들려 주었다. 그가 전에 어떤 환상을 본적이 있는데, 환상 중 많은 꽃이 덮인 큰 방축을 보았는데 멀리서 볼때에는 아름다웠으나 점점 가까이 가보니 깡통이나 고물을 쌓아 둔 쓰레기덤이었고 여기 저기에 조금씩 덮혀 있는 흙에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쓰레기덤과 오늘날의 거짓종교와의 일치점을 들어내어 주었고, 겉에만 엷은 베니야를 붙였고 중심은 그대로라고 했다. 여리고에 있던 사람들은 엘리사를 보고 여리고 성이 아름답기는 하나 물이 깨끗지 않아 무엇을 심어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했다. 엘리사는 그릇에 소금을 담아 뭍 근원에 가서 소금을 치니 물이 깨끗하여졌다. 엘리사가 물 근원 즉 문제의 시발점을 찾아낸 것 같이 우리도 우리의 모든 외적 행동의 근원이 깨끗한지 알려면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의 말씀을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고 했다. 마음이 정결케 되면 즉시 그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사상과 같이 된다. 극단 성경에는 합당한 착의법에 관해서 많이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어느편으로나 극단으로는 치우치지 않고 중간의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료가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5) 의복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갈 가르쳐 주신 분들은 옷을 입되, 언제나 아담하고 깨끗하고 유행의 선봉도 최고 구식도 아니었다. 전도원 몇 사람이 어느 곳에서 최신의 유형의 옷을 입은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를 한 번 더 돌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얼마간 더 가다가 또 한 여인을 만났는데 이 여인은 보통 입는 치마보다 치마의 길이가 몇 인치가 더 긴치마에다 구식의 스타킹을 신어 누가 봐도 외모가 완전히 구식이라서 사람들마다 그를 한번씩 더 돌아보았다고 했다. 여기의 실례를 보면 둘 다 한편씩으로 완전히 치우친 것이다. 고로 둘 다 나쁜 것이다. 성경적인 의미로 보아 둘 중 그 누구도 적당한 옷을 입은 것이 아니다. 그럼 여기에 남녀 그리스도인이 입을 수 있는 적당한 의복의 그 양식을 간단히 말하면, 품위있고 아담하고 깨끗하며 잘 손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복의 양식이나, 방법 역시 극단적인 유행도 최고 구식의 모양도 아니라야 한다. 그래서 뜻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면 "최신식을 찾는데 첫째가 되지 맡고 구식을 버리는 데 마지막이 되지말라" 고 하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 (고전 10:31) 믿는자들은 행위와 마찬가지로 옷 입는데 있어서도 바로 입어서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존경하게 하여야 한다. 모든 일에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살전 5:22) 합당한 옷을 입는 사람들 중에 들어가서 수치를 느낄 옷을 입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의복도 삼가해야 할 것이다. 교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교만이란 "자기"의 작동이며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 되며, 여러 가지 세상 죄의 원인이 된다. 루시퍼가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뛰어난 자 되기를 원한 이유도 교만이었다. (사 14:13) 교만은 겸 손과 완전히 상극이다. 겸손한 자는 결코 세상의 자랑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찾는다. 누구를 막론하고 죄가 그 속에 들어가면 교만, 어리석음이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타락한 시온의 딸들이 머리에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교만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 죽거려 행하여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고리와 면박과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사 3:16-24) 죄는 국가를 멸망시킨다. 이사야는 바로 이 죄에 대하여 외쳤던 것이다. 죄가 좌정한즉모든 악한 일이 뒤를 따른다. 시온의 딸들은 거만하였다. 그들은 목걸이 팔찌 귀고리 면박 화관 면포등 그 당시의 각종 유행품으로 장식하고, 걸을 때 보라는 듯이 걸으며 의복과 장식은 전시의 목적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답게만 보이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옛 격언에 "미인이 하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말이 있으나, 시온의 딸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를 못하다. 비록 그들이 외적인 장식을 갖추었다해도 그들이 참으로 갖추어야 할 참다운 미는 아니었다. 참다운 미는 내적인 덕과 경건이며 참다운 장식이다. 마귀는 교만에 속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젊은 사람들을 잘 유혹한다. 마귀는 젊은이들의 눈앞에 조그마한 보석을 드리우고 "만일 너가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줄 것이며 만일 내 말대로만 하면 이렇게 만들어주마"고 한다. 그리하여 입술 연지와 같은 것의 유혹에 넘어가는데, 이 비참하고 가련한 교만이 오늘날 많은 소녀들의 폐망이 되고 있다. 기도대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다가도 주님의 이 큰 보화를 얻지 못하고 일어서서 가버리는 소녀들도 많은데 그 이유는 어떤 종류의 유행과 인연을 끊지 못한 것인데 예를 들면 단발머리, 짧은치마, 소매없는 옷, 목드러 낸 옷, 입술연지 등등이 있다. 이와 같이 실로 너무 값싼 것에 그 귀중한 영혼을 팔아 버리고 만다. 성경에 얼굴을 치장한 여인이 한 명 나타나는데, 그는 이세벨이라는 여인이다.(왕하 9:30)이세벨은 악한 여인으로 무서운 죽임을 당하고 장례식도 없었고 개들이 그의 몸을 먹어 버렸는데 누구나 그 사실을 읽어보면 아무도 그의 본을 따라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의 본을 따르려고 하면 선한 이의 본을 따르는 자가 되라. 불 근신함 근신치 못한 의복은 언제나 타락한 국민의 뒤를 따라 다닌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 버리면 교만이 들어오고 그 후에는 뻔뻔하고 대담하게 된다. 오늘과 같은 소위 문명시대의 사람들은 옷을 어떻게 입느냐 어떻게 벗느냐에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바지나 짧은치마나 목이 패인 옷이나 근신함이 없이 몸에 너무 붙은 옷이나, 너무 빈약한 옷 등을 입고 보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욕이 되며 가증한 것이다. 성경에도 그러한 말이 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신 22:5) 만일 우리가 이미 세마포를 입었다면 우리의 옷 입는 법이 내적 성품과 일치할 것이다. 극단적인 행위를 좋아하며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옷을 입기 원하는 자는 혼잡한 무리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갈급한 자, 곧 의와 참된 거룩에 미치기를 원하는 자는 내적인 장식이나 예복에 대하여 신경을 쓰는 것만큼 외적인 옷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형인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주위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 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한다. 예찬할 만한 단장 성령이 베드로를 통하여 우리의 단장에 관하여 말하여 주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이 성구가 모든 문제의 열쇠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참된 미를 이루는 것은 용모를 통하여 비쳐 나오는 내적 사람이다.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을 소유한 자가 입고 있는 옷은 가장 값싼 질의 옷일 수 있고, 옷에 특별한 단장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겸손하고 경건한 품위가 너무나 찬란히 빛나게 되어 그 빛은 어떠한 값진 보석의 빛보다 뛰어난 것이다. 수수한 브롯지나 바클이나 실용적인 목적이나 옷의 구조를 이루기 위한 목적의 타이 등은 의복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때도 있다. 그러나 필요치 않은 화려한 단장은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성품의 아름다움이나 값어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을 착용하는 배후에 숨은 목적만으로 그것이 경건과 거룩의 원칙에 일치한가 알아봐야 한다. 이 원리는 남녀에게 똑같이 해당된다. 그 이유는 남자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도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과 똑같이 그 영혼에 정죄가 되며 저주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 말한대로 머리를 땋는 것은 마음속에 교만의 동기와 참 그리스도인의 정신에 배치되는 정도로 매혹적으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머리를 다듬는 하나의 극단적인 방법이다. 여자가 머리를 자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성경에 분명히 말했다. (고전 11:6)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고전 11:14-15) 성경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을 거절하고 고의로 교만과 불근신한 길로 행하면 대머리가 되게 하든지 다른 심판을 나리리라고 했다. 겸손하고 온순한 십자가위 종의 얼굴에서 빛나는 거룩은 항상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주의 깊고 품위 있는 옷을 입게 하는데 그 거룩은 머리를 다듬는대로 비취게 된다. 어떤 종교단체는 그 단체의 구별 방법으로 특별한 통일복을 착용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전하는 말과 생활하는 법과 인도자를 보아 구별되었지만 어떤 특수한 복장을 착용함으로 구별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뚜렷한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은 우리는 세상과 같 게 옷을 입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옷을 입게 하는데 극단적인 모양이 아닌 비교적 보수적인 모양으로 하게한다. 만일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놀 때에나 언제든지 예절 바르고 품위 있게 옷을 입는 것을 기본 규율로 삼는다면 복음의 기준을 준수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요 그 생활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미소를 얻을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1서 2: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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