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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더 큰 욕구
운영자 2019.4.26 조회 1105

하나님에 대한 더 큰 욕구 

배고파 본 적이 있습니까? 주림은 곧 추진력입니다. 우리는 먹을 음식과 잠잘 곳, 그리고 입을 옷을 위해 많은 시간 일을 합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굶어죽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 안에 먹고 싶도록 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에 대해 가르치실 때 보통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육체적인 면과 마찬가지고 영적인 면에서도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육체가 굶주리면 죽습니다. 그와같이 영혼도 굶주리면 죽습니다.

원수 마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 것으로 네 영혼을 채우면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식료품 가게에 가면 선반위 에서 이 세상이 주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토크쇼를 들어보면 대담자들이 하는 말들이 무엇인가요? 테레비에서는 무엇을 방영합니까? 교훈적인 것들입니까? 이 세상은 분명 주리고 목마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어릴 때 죄로 알았던 것들이 이제는 개방이 되어 괜찮은 것으로 용인되고 있습니다. 우린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추세가 교회에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의와 순결과 거룩을 구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생활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마귀는 두루 돌아다니며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조금만 밖에 나가면 너의 주림을 채울 수 있어" 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인이 되면 아주 조금만 나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탕자는 그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가서 유산을 달라고 했을 때는 앞일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는 행복한 모습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돈이 있었지만 즐기는 일에 다 탕진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끝나자 그는 돼지우리 안에서 돼지가 먹는 음식조차에도 주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사야는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55:2) 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 것들로는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것이 있어야 만족합니다.  

의에 주리면 무릎을 끓게 됩니다. 잘 아는 찬송가에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귀하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얼마나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까? 잠시 무릎을 끓고 "주님, 오늘도 복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만 하는 식의 기도를 드리고 가기 볼일을 보러 갑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갈급함을 달라고 간구하면서 기도하는 일에 기꺼이 많은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위로부터 능력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문도들은 주린 마음으로 매일매일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미침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행2:2). 그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성령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날 내린 그 능력은 오늘 우리들을 위한 은혜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9)고 했습니다. 즉 그 약속은 오늘날 주린 심령으로 하나님과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저의 매형 얼 개리슨은 구원을 받고 그와 같은 주린 심령을 갖었었습니다. 내가 어릴 대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 난 그를 우상시 했습니다. 그의 냉장고 안에는 항상 맥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게 가면 내가 피우고 싶은 담배를 무엇이든 다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안락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담배 재를 마루바닥에 그냥 툭툭 털어버리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면 안돼"라고 누나가 말하면 그는 "그래야 벼룩이 없어지지"라고 대꾸하였었습니다.  

내 나이 18살 때 난 기도하여 구원을 받았고 얼마 후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얼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같았으면 그 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내 믿음 때문이 아닌 줄 압니다. 어느 토요일 밤 내가 집에 간 후 우리 일행들은 한 교인의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얼이 "집에 가기 전에 내일 주일공과를 읽어보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이루어진 그 놀라운 변화!  

얼의 마음속에는 성령침례에 대해 주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차를 타고 직장으로 가는데 자동차 브레이크가 마치 "넌 성령침례를 받아야 한다 너는 성령세침를 받아야 한다" 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는 하이슬러사에서 선반을 돌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선반도 그에게 "너는 성령침례를 받아야 한다 너는 성령침례를 받아야 한다" 라고 말하는 듯 하였습니다. 그날 밤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모퉁이를 막 돌아 정차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그 자리에서 그에게 강림했습니다. 그는 집에 가서 아내에게 말해주기를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내는 "당신 성령침례 받았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에티오피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국고를 맡은 사람이었는데 영적으로 갈급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보고 오는 길이었지만 그의 심령은 여전히 갈급했습니다. 마태복음 5:6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병거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사람이 주린 심령을 가졌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빌립을 그에게 보내어 예수님에 대해 전하도록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 분만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며 죄로 찌들린 사람도 새 피조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에티오피아 내시는 주리고 목말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믿었고 만족함을 얻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라고 했습니다.  

주리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급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은 한 순간에 스며들어와 우리의 갈급한 마음을 둔화시켜 버립니다. 신혼시절의 어느 날 밤 회사 사장님이 퇴근길에 내게 밀크쉐이크를 사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난 기분이 좋았지만 집에 돌아가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멋진 만찬을 보고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은 매우 언잖았습니다.  

복음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 것을 따르면 영적 욕구가 생기지 않습니다 들어서 안될 말을 듣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하면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영적 욕구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갈급함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주린 마음이 있습니까? 성결함을 받지 못했지만 성결에 대한 갈급함은 있습니까? "오! 주님, 순결해지기를 원합니다. 거룩해지고 싶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이 성결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체험을 구하여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결케 된 후에는 성령침례를 구해야 합니다. 주린 마음이 있으면 그 체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눅6:21)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체험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다른 많은 은혜들은 지금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자! 이제 주린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얼 필립은 오레곤주 메드포드 사도의신앙교회 담임목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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